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Exile on Main St. (문단 편집) == 녹음 배경 == 이 앨범이 만들어질 당시의 상황은 밴드 내부적으로도 밴드 외부적으로도 많이 힘든 시기였다. 밴드 외부적으로 그들은 [[앨런 클라인]]과 계약 문제때문에 돈을 지급받지 못해 세금 납부의 어려움을 겪었다.[* 후에 [[앨런 클라인]]과 저작권 문제로 소송까지 벌였으며 [[앨런 클라인]]은 지금까지도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팬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그래서 세금 납부의 어려움을 잠시 피하고자 과거 나치의 본부였던 [[프랑스]] 남부의 맨션인 넬코트로 도망쳤다.[* 맨션에 설치한 스튜디오의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후반 작업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진행하였다.] 밴드 내부적으로는 당시 밴드는 많은 수의 프로 뮤지션들을 맨션에 초대하여 녹음을 하고, 뒷풀이로 술과 마약, [[그루피]] 혹은 고급 창녀들과의 섹스로 점찰된 파티를 열었는데 [[믹 테일러]]가 이에 불만을 표현하면서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가 시작되었다.[* ‘cocksucker blues..’라는 다큐를 보면 밴드가 얼마나 퇴폐적인 사생활을 보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앨범 제작 당시 [[믹 재거]]가 비앙카와 눈이 맞아 잠시 동안 잠수를 타는 바람에 키스 리처즈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롤링 스톤스의 앨범 중 가장 믹 재거의 기여가 낮은 앨범이 되었고, 롤링 스톤스의 앨범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이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덕분에 [[키스 리처즈]]가 모든 것을 지휘했기 때문에 미국 대중음악의 뿌리에 더 가까워질수 있었다고 평가하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리고 밴드에서 조용하지만 나름 똘끼(?) 있는 [[빌 와이먼]]도 녹음에 자주 불참했다. 그래서인지 키스 리처즈와 믹 테일러가 대신 베이스를 연주하는 곡이 많은 편이다. >'''Exile의 많은 곡들은 [[키스 리처즈]]의 스타일대로 만들어졌죠. 우리는 그 곡을 20번, 더해서 20번 연주했답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걸 알았어요. 하지만 그는 매우 느슨(loose)했죠 ''' >---- > [[찰리 와츠]] 이런 퇴폐적인 생활과 좋지 못한 환경이 역설적으로 이 앨범의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습한 지하실에서 녹음을 해서 믹싱이 정말 특이하고, 밴드가 술과 마약을 하고 녹음을 하였는지 곡들이 퇴폐적인 그루브와 소울이 가미되어 있다. 또한,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퇴폐적인 [[락스타]] 생활에 회의감을 품은 가사들이 이 앨범에 많이 쓰이게 된다.[* 대표적으로 Rocks Off, Torn And Frayed, Sweet Virginia.] 이렇게 당시 밴드의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본작은 음악적인 성과가 압도적이라고 평가받는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밴드 멤버들에게는 현재까지도 괄시와 푸대접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녹음 당시 워낙 고생한데다 싱글들이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에 롤링 스톤스 멤버들은 이 음반에 실린 곡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앨범 속 몇 곡들은 라이브에서 부른 적이 손에 꼽을 정도. 롤링 스톤스, 특히 믹 재거는 애당초에 자신의 작업물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걸로 유명했다. 자신의 최애 앨범으로 꼽은 [[Let It Bleed]]를 제외하고.] 그래서 수록곡들은 라이브로 불린 적이 거의 없으며, 이후 이 앨범과 같은 스타일의 음악도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Aftermath]]부터 이어진 롤링 스톤스의 소위 '[[명반]] 퍼레이드'가 끝나게 된다. 이후 다시 '명반'이라 평가 받는 음반이 나오는 것은 [[Some Girls]]가 나오는 [[1978년]]으로 약 6년을 기다려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